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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그니스.jpg

천장이 넓은 거실은 인기척이 없이 쓸쓸했다. 유사쿠를 맞이한 청년의 얼굴은 놀랍도록 아름다웠다.

 

“이 주변에는 이 저택 말고는 아무것도 없으니까, 바다에 놀러온 분들이 폐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그렇게 말하며 그는 미소를 지었다. 바다보다도 푸른 눈동자가 웃음에 스러지는 것을 보는 것은 마치 파도치는 해안가를 보는 것만 같았다. 이 저택에 들어온 지도 얼마 안 된 유사쿠가 본 것들 중 가장 아름다웠다. 

 

한적한 바닷가의 절벽 위의 저택. 그런 단어의 나열만 듣고서는 상상조차 하지 못할 현대식의 집이었다. 유사쿠가 통과한 대문부터가 전자식이었다. 지금 들어와 있는 거실에서도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계음이 어디선가 낮게 웅웅거리고 있었다. 서버실? 무심코 그런 단어가 뇌리를 스쳤다.

“전혀 소문 같은 장소는 아니군요.“

유사쿠의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그런 말이 나왔다. 그 말을 들은 청년은 눈을 동그랗게 뜬 뒤, 다시 한 번 살짝 웃었다. 바다를 마주보고 있는 절벽 위, 버려진 저택에서 유령이 나온다. 그런 헛소문을 듣고 찾아온 손님에게 보이기에는 지나치게 상냥한 표정이었다.

 

“유령이 나올 리가 없지요. 여기서 계속 살고 있는 저도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까.”

“그렇군요……”

약간 부끄러워져서, 유사쿠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폐를 끼친 것은 아닐까 걱정이었다.

 

“말씀드린 대로, 이 저택을 방문하는 사람도 이제는 없으니까요. 아마 지나치던 사람들이 멋대로 생각한 것이겠지요.”

청년의 짧고 단정하게 자른 백발은 한 송이 백합 같은 인상을 주었다. 유사쿠는 그를 계속 바라보고 있고 싶었다. 유사쿠보다 한두 살 연상으로 보이는 그는, 오래 전부터 이 곳에서 혼자 지내고 있었다고 했다. 이름은 코가미 료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 기분이 들었지만, 유사쿠는 어디서 들었는지까지는 기억해내지 못했다. 어딘지 익숙한 그 음절은 유사쿠의 뇌리에 질질 끌리는 자국을 남겼다.

 

“--이후로는 저 혼자 계속. 아.”

 

청년, 코가미 료켄은 액자틀처럼 바다를 담고 있는 거대한 전면 유리창을 문득 바라보았다.

 

“비바람이 오는 모양이에요.”

“아.”

 

창문에 굵은 빗방울이 투둑,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해안가에서 갑작스러운 날씨의 변화는 자주 있는 일이라고 료켄은 설명했다. 

유사쿠에게는 낭패였다.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는 집을 조사하려고 했던 것 뿐인 유사쿠는, 이런 외딴 곳에 이렇게 오래 머무를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다. 비구름과 몰려오는 어둠은 유사쿠가 이 집까지 올라오기 위해 지나온 수많은 돌계단과 숲 속 흙길을 다시 걸어 내려가는 것을 충분히 어렵게 할 터였다. 곤란해 보이는 유사쿠의 심정을 알았는지, 청년은 하룻밤 묵어가라고 제안했다.   

 

“다른 건 몰라도. 남는 방은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아, ……고맙, 습니다.”

 

유사쿠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쑥스럽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원래 가져온 짐이라고는 작은 가방 하나 정도였던 유사쿠는, 집 주인의 안내를 받아 저택 구석의 손님방에 들어가게 되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인지, 훤히 뚫려 있던 널찍하고 전망 좋은 거실보다 훨씬 좁은 방 안은 불이 켜져 있는데도 한층 더 어두웠다. “안녕히 주무세요.” “내일 또 만나요.” 그런 흔한 인사말을 서로 건네고서, 


 

어두운 방 안에서, 집 주인이 준비해 준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푹신한 침대에 누워서도 유사쿠는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이 집에 오기 위해서 꽤나 먼 길을 걸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눈은 말똥하게 떠져 있었다.

후지키 유사쿠는 불면증을 앓고 있다.

 

거슬러 올라가면 10년 이상 전부터였다. 어렸던 유사쿠는 어떤 ‘사건’에 휘말렸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자신이 전혀 모르는 장소에서, 어린 유사쿠의 힘으로는 어떻게도 할 수 없는 무서운 일이 일어났던 것을 알고 있다. 그 사건은 유사쿠가 구출되고 난 뒤에도 그의 정신에 도저히 사라지지 않는 커다란 흉터를 남겼다. 그 사건과 비슷한 조건. 좁고, 어둡고, 낯선 곳에서는 스스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불안을 느끼게 되곤 한다,

 

그 사건 이후로, 그는 제대로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집에서 수면 유도제의 힘을 빌려 겨우 잠들고는 했다. 갑작스러운 비바람으로 여기에 묵게 된 순간부터 잠들지 못할 것은 예상하고 있었다. 낯설고 어둡고 어디에도 나갈 곳이 없는 좁은 방. 인기척이 없는 장소. 안전하고 깔끔한 방의 인상도, 고급스럽고 푹신한 침대도 그를 안심시키지는 못했다. 



 

탕!

 

뜬눈으로 뒤척이고 있던 유사쿠는, 온 저택에 갑자기 울려 퍼진 파열음을 듣고 전신의 신경을 곤두세웠다. 생일 파티에서 폭죽을 터뜨리는 소리 같기도 했다. 불꽃놀이의 화약이 펑, 하고 터지는 소리 같기도 했다. 작은 폭발음 같기도 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이런 조용한 밤에 어울리는 것은 아니었다. 혹시, 

 

“총소리……인가!?”

 

거기까지 생각이 다다른 직후, 유사쿠는 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소리가 들려온 것은 복도 쪽이었다. 오늘 집 주인이 들려준 이야기로는, 이곳은 다른 사람들이 거의 오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것을 노리고 찾아온 강도일 수도 있다, 아직 그가, 료켄이 잠들어 있다면 어서 깨워서……이번에는 지켜야 한다.

이번에는?

 

스스로의 생각에 의문을 가질 겨를도 없이 문을 박차고 복도에 선 유사쿠의 눈앞에 몇 가지 광경들이 스쳤다. 

 

어둠.

번쩍하는 불빛.

어린아이의 울음소리.

소음.

 

그리도 시야는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유사쿠는 몸을 비틀거리며, 복도의 벽을 짚고 겨우 서 있었다. 방금 전에 본 것은 지금 여기서 일어난 것은 아니다, 괜찮다.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전혀 괜찮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10년 전의 사건. 방금 본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아직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좋지 않은 것임은 알고 있었다. 지끈지끈 아파오는 머리의 통증을 무시하고, 움직이지 않으려고 하는 다리를 채찍질해 앞으로 내딛었다. 지금 해야 하는 것은 료켄을 찾는 것이었다.



 

삐, 삐, 삐, 삐.

 

이 집에 발을 들였을 때부터 들리던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계음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복도에서 보이는 방의 문들은 잠겨 있었다. 유사쿠가 문고리를 돌려도 뭉툭한 철컥, 소리만 나고 방은 열리지 않았다. 오늘처럼 게스트 룸의 문도 열지 않은 평상시에는 이 집의 수많은 방들 중 극히 일부만 사용되고 있을 터였다.

 

벌써 수십 개의 방의 문을 손에 닿는 대로 열고 있었지만, 어느 문도 열리지 않았다. 복도에 있는데도 어딘가에 갇힌 듯한 고립감에 지금 당장이라도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아, 아아, 흑, 으아앙……”

 

복도 먼 곳에서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유사쿠는 흠칫, 몸을 떨었다. 울음소리 외의 다른 소리, 발자국 소리 같은 것은 들리지 않았다. 어린아이의 가냘픈 울음소리는 서럽게 누군가의 도움을 구하는 듯했다. 유사쿠도,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어서 그 아이를 찾아내서 도와주려고 했을 터였다.

어린아이? 

이 집에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이 살고 있을 리가 없었다. 오늘 그가 뭐라고 말했던가? 이 곳에 그는 계속, 혼자서……

 

“흑, 흐윽, 아아……”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뛰었다. 유사쿠의 몸은 저도 모르게 소리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택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탓에, 창문으로 바깥을 보아도 여기가 어디쯤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그저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의 반대쪽으로 계속해서 뛰었다.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아직 문을 열어보지 않은 방이 있는, 와 보지 못한 복도까지 왔지만 뛰었다.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는 귓가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막다른 길이었다. 울음소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유사쿠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아직 초등학교도 가지 않았을 것 같은 작은 몸집의 어린아이가, 유사쿠를 올려다보며 울고 있었다.

 

“너는……?”

 

두려움보다도 먼저, 유사쿠는 놀랐다.

 

“왜 돌아왔어?”

눈물이 가득 담긴 푸른 눈이, 유사쿠를 원망하듯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너를-”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그 이상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눈을 깜빡인 순간, 어린아이도 울음소리도 처음부터 그 곳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져 있었다. 유사쿠는 안도보다는 슬픔을 느꼈다.



 

어린아이가 사라지자, 복도에는 경고음처럼 계속해서 울리는 삐, 삐 소리만이 들렸다. 그 소리의 정체는 금방 발견할 수 있었다. 집주인과 마주 앉아 대화했던 거실에, 분명 그 때는 없었던 물건이 있었다.

 

‘이건……‘

 

침대였다. 사람이 누워 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적합한 단어였다. 그러나 그 생김새는 유사쿠가 방금 전까지 자기 위해 누워 있던 침대와는 전혀 달랐다. 마치, 대학 병원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김새. 기계적인 외관. 이곳에 누워 있는 사람의 상태를 표시하기 위한 모니터. 유사쿠의 뇌는 ‘생명 유지 장치’라는 단어를 꺼냈다. 그러나 거기에 누워 있는 것은 살아 있는 인간이 아니라, 이미 한참 전 바싹 말라버린 시체였다. 

시체가 바로 눈앞에 있는데도, 이상하게도 유사쿠는 그다지 두렵지 않았다. 방금 만난 어린아이에 비하면, 이건 아무렇지도 않았다. 기기가 삐, 삐, 삐, 반복해서 경고음을 내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장치에 시체가 들어있는 것이었다. 오류가 나는 것도 당연했다. 시체의 얼굴을 확인해 보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기계로 가까이 다가가 얼굴을 덮고 있던 기기를 들어 올렸다. 시체의 얼굴을 보려고 했다. 나이든 남성이었다. 얼굴을 똑바로 확인하기 전에 시체도, 기기도 사라졌다. 아까 전 같은 놀라움이나 슬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작은 궁금증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불편함, 그 뿐이었다. 


 

료켄을 찾자, 그런 생각을 했다.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료켄을 찾기 위해 온 것이었다. 총소리를 듣고 방 밖에 나왔을 때부터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이 집의 유령 소문을 듣고 찾아오게 된 것도, 평소의 자신의 행동에 비추어보면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단정하고 아름다운 얼굴이었지만, 맨 처음 료켄과 만났을 때 그렇게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한 것도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이었다. 분명 자신은 료켄을 찾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어둠 뒤에 가려진 과거의 기억에 금방이라도 손이 닿을 것 같았다. 

 

다시 조용해진 복도를 목적지를 찾지 못하고 떠돌고 있던 유사쿠에게, 이번에는 어린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깔깔거리는 목소리들은, 장난이라도 치고 있는 듯이 즐거워 보였다. 이번에는 금방 환청임을 깨달았다. 그래도 유사쿠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그 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계속 귀를 세우고 있었다.   

“아하하!”

한 번 크게 까르르 웃고서는, 두 목소리는 다시 사라졌다. 다른 곳으로 놀러간 것이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고서, 유사쿠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유사쿠는 어렴풋이 이해했다. 

료켄은 나를 만나고 싶지 않아한다. 방금 만난 소년의 환상으로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게스트룸에서 가장 먼 곳에 있겠지. 유사쿠는 방향을 정하고 걷기 시작했다. 저택의 주인이 있을 만한 방이라면 서재나 침실이다. 유사쿠는 망설임 없이 서재 쪽을 골랐다. 침실에 있어도 잠들지 못할 뿐이다. 그도, 나도.

 

넓은 집 안을 한참 걸어 서재를 찾아내었다. 서재 문 아래쪽으로는 문틈 사이로 흘러나온 붉은 피 같은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유사쿠는 문을 두어 번 두드렸다.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후지키 유사쿠인가.”

 

끼익, 소리가 나는 문을 열고 유사쿠는 안으로 들어갔다.

 

아늑한 분위기의 서재였다. 문을 열자마자 바로 마주 보이는 집무용 책상에 마련된 색이 짙고 등받이가 긴 의자에 깊이 앉아 있는 색소가 옅은 청년은, 밤의 어둠 속에 혼자 붕 떠 있는 유령처럼 보였다.

그는 마치 유사쿠가 이 곳에 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료켄.”

“네가 왜 여기로 돌아왔는지 궁금했다.”

 

료켄에게는 처음 만났을 때의 상냥한 태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자주 미소를 짓던 얼굴에는 웃음기 하나 없었고, 푸른 눈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나는 너를 찾고 있었어.”

망설임 하나 없이 그런 료켄의 눈을 마주보는 초록빛 눈동자를 보고, 료켄은 날을 세우고 있던 기색을 살짝 누그러뜨렸다.

“나는, 네가 그럴까봐 걱정이었다.”


 

청년은 뭔가가 재미있다는 듯이 킥킥 웃었다.

“처음에는 드디어 내가 어디 있는지 찾아낸 건가, 하고 놀랐는데. 설마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을 줄이야.”

유사쿠는 살짝 얼굴을 붉히고 툭 대답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지금까지 잘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어.”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네가 잊고 있으면 그걸로 괜찮았어.”

 

유사쿠가 어릴 적 갇혀 있던 곳에서 그를 꺼내준 것은 어린 시절의 료켄이었다. 그것까지는 기억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유사쿠는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직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둡고 무서운 곳에서, 나를 구해준 것이 너였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어. 시끄러운 소리가 나고, 불꽃이 튀고, 네가 우는 소리가 들리고, 그리고 끝이었어.”

유사쿠는 여기까지 말하고 숨을 돌렸다. 한참 동안 잊고 있었던 사실과 다시 마주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계속, 네가 누군지는 잘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항상 널 구하고 싶었어. 지금까지 계속 잠들지 못하고 악몽을 꾼 것도, 분명 그때 나를 구해준 네가 어떻게 되었는지 몰라서였을 거야. 네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었는데-”

유사쿠가 천천히 기억을 되살리는 것을 료켄은 복잡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곧, 크게 한숨을 쉬었다. 더 이상 진실을 숨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표정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었다고? 알려주지, 후지키 유사쿠.”

료켄은 책상의 서랍을 열어 무언가를 꺼냈다. 손에는 검은 총이 들려 있었다.

“료켄!?”

유사쿠가 저지할 여유도 없이, 료켄은 방아쇠를 당겼다. 

 

탕, 하는 소리와 함께, 료켄이 쏜 총알은 유사쿠가 아닌, 서재 한편의 바닥을 꿰뚫었다. 그 곳에는 유사쿠가 확인하지 못했던 생명 유지 장치 속 남성의 시체가 누워 있었다. 이미 죽은 몸은 총격에도 불구하고 그 이상 움직이지 않고 침묵하고 있을 뿐이었다.

“먼저, 너를 꺼내고 난 뒤 이렇게 아버지를 쏘았다.”

“……”

어둠과 불꽃 소리. 그 때와 다른 것은 눈앞에 있는 청년은 울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생명 유지 장치도 없는 곳에서, 이미 죽은 시체의 또 한 번의 죽음으로 인해 삐, 삐, 삐, 소리가 다시 울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내 힘으로는 어떻게도 할 수 없었어. 이 집에 오는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결

국, 내가 할 수 밖에 없었어……너를 구하기 위해서.”

그리고 료켄은 손에 든 총의 총구를 천천히 자신의 관자놀이에 대었다.

“료켄!”

탕, 소리와 함께 유사쿠의 시야는 흐려졌다.

마지막으로 료켄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너와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아.”


 

비바람이 그치고, 아침 해가 떠올랐다. 창문을 통해 햇빛이 들어오는 게스트 룸에서, 유사쿠는 눈을 떴다. 

‘꿈인가?’

언뜻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어제 나는 료켄을 만나 이 집에서 잠들었고, 자신이 보는 앞에서 료켄은……. 정신이 들자마자, 유사쿠는 료켄을 찾아 서재로 향했다.

해가 비치는 집 안은 어젯밤과는 인상이 달랐다. 시설은 모두 현대식이었지만, 바닥도 창틀도 먼지가 수북히 쌓여 있었다. 사람이 살지 않게 된 지 벌써 10년은 지난 듯 보였다. 밤과는 달리 길을 찾기도 쉬웠다. 어린 아이의 목소리도, 이상한 삐, 삐,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서버실의 웅웅거리는 소리 같던 소음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빈 집이었다.

서재 앞에 선 유사쿠는 잠시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안의 불은 켜져있지 않았다. 어제 본 환상처럼 피가 새어나오고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어제 본 것이 전부 사실이라면, 료켄의 피가, 그리고 시체가 있을 수도 있었다. 그것이 무엇보다도 유사쿠에게는 무서웠다.

 

드디어 마음을 굳게 먹고, 서재의 문을 끼익, 하고 열었다.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유사쿠는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가, 료켄이 앉아 있던 의자를 건드려 보았다. 피도, 냄새도, 사람이 앉아 있던 온기도 당연히 없었다. 어제 그가 총을 꺼낸 서랍을 열어 보았다. 얇은 먼지가 부드럽게 쌓인 서랍에, 작은 6연발 권총이 하나 들어 있었다. 서랍 안에 들어 있어서인지, 권총은 유난히 반질반질하고 깨끗했다. 탄창은 비어 있었다.

“너는 나를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유사쿠는 중얼거렸다.

“나는 너를 다시 만나고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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